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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또다른 눈

수다공작소 2010. 2. 18. 02:08

 

나는 심도있는 철학보다는 이솝우화에 나타난 깔끔, 명료한 메세지의 철학이 좋다. 이와 마찬가지로 학문으로서의 철학보다는 생활 그 자체로서의 철학을 선호한다. 다시 말해,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철학이야 말로 내게 있어 참 철학인 셈이다.

 

오쇼 라즈니쉬, 칼릴 지브란, 아우렐리우스. "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문화광장. 1992

 

행복의 기준이야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

'피리부는 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 음율은 행복에 넘쳐 있었다'

그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어떤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벌거벗은 채 어둔 곳에서 피를 불고 있다. 어쩌면 도적을 만나 그리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모든 것을 잃고서 행복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럼 무소유가 행복의 비결인가?

 

자기를 비우는 게 행복의 지름길

 

여기서 무소유는 물질 뿐만 아니라 정신도 포함하고 있다. 즉, 자기 자신도 자기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피리부는 행위다.

'내가 이 피리를 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나를 통해서 불고 있는 거요. 나는 비존재요. 나는 무無이며, 누구도 아니오'

즉, 피리부는 행위(예술로서의, 혹은 종교 행위로서든지)가 그를 무아지경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은 부분으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렇다고 부분이 그림 해석에 있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우선 전체적으로 그림을 봐야 한다. 그래야 부분의 역할과 기능을 더욱 근접하게 알 수 있다. 밀레 그림 속의 농촌 풍경은 마냥 고즉넉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그림을 그릴 당시 세상은 산모의 고통과 엇비슷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 모든 일을 관망해서야 쓰나? 그것은 도피일 뿐이다.

 

p45 "당신이 아무것도 아닐 때(마음이 가난한 자일 때) 전체가 된다. 당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해 봐라. 그러면 당신은 불행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시시각각 변한다.

고정된 시각으로는 그 세상을 제대로 맛볼 수 없다.

 

p41 "실체(상황)는 고정된 현상이 아니다. 그대는 현재에 존재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그 안에... 오직 그때의 반응만이 실체와 부합할 수 있다. 만약 그대의 대답이 미리 고정되어 있다면 그대는 이미 죽은 것이며, 이미 놓친 것이다. 내일이 오면 그대는 내일을 맞지 못한다."

 

스칼렛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꺼야"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생각을 고쳐먹었기 때문이었다. '흙'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을 때의 그녀의 삶은 비극이었으니까.

 

붓다에게는 탈출이었으나 그의 추종자들에게는 굴레가 됐다

 

p32 "성姓이야말로 세상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 (중략) 붓다 자신에게는 그것이 옳았다. 그에게는 그것이 도피가 아니라 감옥(29세까지 성적 쾌락 만끽)으로부터의 탈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자(그의 추종자)들에게는 그것이 감옥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하나의 굴레가 되었다."

 

붓다는 자신의 과거, 즉 아버지가 만들어 준 인큐베이터 안에서의 쾌락적 삶에서 끊임 없이 불거져 나오는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 도道를 닦았고, 급기야 무無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는 그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극히 개인적인 방법이었고, 또한 그의 그런 행위에 대한 동기는 세상적 쾌락을 맛 본 후의 개탄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그를 선생으로 모셔야겠다고 여긴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와 비슷한 과거 경험을 소유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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