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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부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

수다공작소 2010. 4. 30. 15:36

한비야의 "지도밖으로 행군하라"와 비슷하면서도 기자가 가질 수 있는 섬세하고 사실적인 문장맛이 독보인다.

 

P 21 "나는 '인생 선배'라는 이름으로 존중을 가용하는 어른신들의 나이 따지기 병을 아주 질색한다. 그 존중이라는 건 나이, 성별, 국적, 피부색을 불문하고 자연스럽게 우러나와 서로 주고받아야 할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막말로 나잇값을 하면 인생 선배는 자연스럽게 붙을 텐데, 왜들 그걸 모르실까."

 

P 23 "국경없는기자단(RSF)"    관련홈페이지 http://www.rsf.org/

 

가난과 부채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

 

p 77 " 버마(미얀마) 젊은이들 대부분은 망가진 교육시스템과 경제난에 미래 설계는 꿈도 못 꾸고 있었다. 2004년 9월 기준으로 볼 때, 변호사 월급이 1만 5000차트, 중등 교사 월급이 1만 2000차트, 초등 교사는 7000차트, 호텔 매니저는 1만에서 1만 5000차트 사이다. 제법 '버젓해 보이는' 이들 직종의 월급이 우리 돈 1만 5000원 내외다. 제아무리 버마 물가가 싸다 한들, 이건 최저 생계비에 턱없이 못미치는 수준이다. 유엔이 정한 하루 최소 생계비 2달러에는 그 근처도 가지 못한다. 수도 랑군의 시장 물가를 보면 이런 벌이로 먹고사는 게 신기할 정도다.

 

랑군 중심가에서 티셔츠 하나는 1000차트 내외이고, 아주 저렴한 식당의 한 끼가 400차트 내외, 거리에서는 150에서 200차트 정도의 끼니도 가능은 하다. 시내 교통비는 20차트인데,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할라치면 월급의 절반을 쏟아 부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진다.  (생략)  월 1만 차트를 버는 호텔 매니저 원 나잉(가명, 25)처럼 버마의 젊은이들이 이주 노동자의 꿈을 꾸고 있는 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나는 그들의 '꿈꾸는 현실'을 말릴 재간이 없었다."

 

P 101 "2003년 한 해 동안 부유한 축에 속하는 펀자브(punjab)주에서만 3000명의 소작농이 가난과 부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금이 중세의 봉건사회도 아닌데 소작농이 왠말인가? 인도 전체적으로 1만 명의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자살을 선택한다고 한다. 참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작농이라고 하면 땅을 빌려 거기서 농사를 짓고, 수확철에 소출을 만들어 일정 부분은 땅 주인에게 주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렇게 주인에게 모든 것을 지불하고 나면 겨우 먹고 살 정도나 아니면 빚더미에 앉는다고 한다. 이 내용은 포레스트 카더의 "내 인생이 따뜻했던 날들"에 자세히 나와 있다. 아무튼 세계는 진정이지 인터내셜리즘이라는 거대한 축에 짓눌려 이런 오지스러운(?) 일들을 호도하기 일쑤다.

 

p 104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로 나뉘는 카스트 그룹에도 끼지 못하는 불가촉천민 '달리트(Dalit)'. 그들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일화가 하나 있다.

 

2002년 10월 5일. 인도 북부의 하리아나에서 힌두 극우주의자들이 소가죽을 벗기고 이를 팔아 생계를 잇는 달리트 청년  5명(15~20세)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신성한 소'를 죽여 가죽을 벗긴다는 것이 '인간'을 죽인 이유인데, 경찰은 '증거 없음'이라는 수사 결과를 냈고 가해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불가촉천민(untouchable), 1억 6000만 인구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하리잔(Harijan)이라고도 한다. 인도에는 수천 년간 인도인의 생활을 규율해 온 신분제도로서 카스트가 있는데, 브라만(Brahman)·크샤트리아(Kshatriya)·바이샤(Vaisya)·수드라(Sudra) 등의 4계급으로 나누어진 카스트 체제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제5계급인 불가촉천민은 인도의 전역에 거주하며, 총인구의 약 15%에 달한다. 이들은 청소·세탁·이발·도살 등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담당하며, 거주·직업 등에서 엄격한 차별대우를 받아왔다. 이러한 계급질서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인도 사회를 안정시키고 결속시키는 데 도움을 준 면도 있으나, 사회를 정체시키고 활력을 잃게 하는 등 많은 폐단을 낳았다.


 

1955년에 불가촉천민법이 제정되어 하리잔에 대한 종교적·직업적·사회적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현재 인도에는 1억 명이 넘는 하리잔이 있는데, 정부에서는 입학이나 취업시 일정비율을 이들에게 배정해 주는 등 혜택을 주고 있으며, 하리잔 출신의 장관도 배출되고 있다. 이처럼 법적으로는 차별이 금지되었으나 인도 전역에는 아직도 카스트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어 종교적·문화적·사회적으로 차별을 받으며 절대적인 가난 속에 살고 있다.

 

물로 내가 왕이 사는 나라에 있다고는 하지만 수천 년간 내려온 이런 말도 안되는 신분제도가 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피었다는 인도에서 여지껏 존재하고 있다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것은 재밌어서 발췌해 본 부분이다.

 

p 131 "내게 좌파 무장투쟁은 여전히 파고 싶은 간질간질한 귓구멍 같은 존재였다."

 

나는 누구에게 여전히 파고 싶은 간질간질한 귓구멍 같은 존재였던 적이 있었던가?

 

p 140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인 그 시절 어머니는 무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고 우리 집은 하루가 멀다 하고 '종교 전쟁'을 치렀다.

    "우리 집안에 예수가 다 뭐야 예수가."

    "뭐긴 뭐야!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지."

한쪽은 '신사상'에 대한 궁금증도 조금의 관용도 없었고 그 '잘난' 집안 타령만 했다. 그럴수록 다른 쪽은 신사상에 더욱 집착.몰입해갔다. 그리고 전쟁을 피해 달동네 바위 언덕에서 별밤을 보내던 열 살 소녀는 저 전쟁이 빨리 끝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신사상으로 기울었다. "

 

p 138 " 단 3개월 만에 2000여 명의 무슬림들이 힌두 극우주의자들에 의해 학살되었던 그 무시무시한 광기를 추척하면서"

 

- 1947년 인도 대륙은 커뮤널 폭동 사태로 수십만이 죽어가는 가운데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할되었다.

 

인도반도가 여러 국가로 분리된 배경

 


이 사건의 뒷 배경을 대략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영국이 남부아시아, 즉 지금의 인도, 파키스타, 방글라데시, 스리랑카를 식민지화 했고, 이후 시간이 흐르자 이들 땅의 주인들이 독립과 주권을 부르짓게 됐으면, 때마침 발발한 2차 세계대전이라는 호재로 독립을 약속 받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이슬람교도 많은 동서파키스탄은 파키스탄으로, 불교도가 많은 실론은 스리랑카로, 그리고 나머지 힌두는 인도로 분리됩니다. 이후 서파키스탄의 압제에서 분리 독립하여 생긴 게 바로 방글라데시입니다.

 

참 복잡한 나랍니다. 아웃리치할 때는 이렇게까지 얽히고 설킨 나라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막상 이렇게 알고 보니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제국주의로 인해 가장 피를 많이 본 나라가 우리나라라고만 생각했는데, 언능 생각을 고쳐먹어야겠습니다.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이유경 국제분쟁 전문 저널리스트 penseur21@hotmail.com)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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