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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미아리 시위중 총에 맞아 사망한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

수다공작소 2010. 4. 19. 08:52

4.19 미아리 시위중 총에 맞아 사망한 한성여중 2학년

故진영숙 양을 기리며

 

눈물이 나리던 어느 4월의 봄 

진영숙, 그녀는 삶을 떨궈 꽃을 피웠다.

조국 광복 이루었다며 맘껏 자유를 불렀거늘 

금 간 겨레의 모냥이 을씨년스럽다.

너들아, 역사가 두렵지 않느냐?

4월의 우리 영혼은

춘풍에 나란 벛꽃마냥 행복했다.  

  '진영숙' 을 생각하며, 수다공작소

 

 

50년 전 4월 우리는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 운동을 만나게 됩니다. '피의 화요일'로 불리던 그날의 함성은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을 기억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정권욕과 독재성으로 인해 이루어진 3.15 부정선거, 그리고 국민들의 분노. 1960년 4월 19일 최초의 민주주의 혁명은 한국적 스튜던트 파워student power1)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인해 전국적으로 186명이 사망하고 6,026명 부상을 입은 피로 얼룩진 대한의 역사. 결국, 국민의 승리로 끝난 4.19는 국민들이 스스로가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패러다임의 계기를 마련합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 진영숙의 유서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닌,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15살의 작은 몸의 여학생의 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장한 마음이 담겼습니다. 노숙자 로우킥이니 장애인 로우킥 동영상 등의 몰지각한 행동과는 달리 故 진영숙 양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삶을 고민하고 또 실천했던 것입니다.

 

이젠 우리 폭정에 견딜 수 없어

자유의 그리움으로 분노를 뱉는다

아, 총탄에 뚫린 4월 그 가슴 위로

넋이 되어 허공에 출렁이는 아 자유여 만세"

 

서울대 메아리, '4월 그 가슴 위로' 중에서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마다 두 손 두 발 들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웠던 우리 국민들. 그 정신과 그 숨결이 없었다면 오늘의 자유는 애시당초 없었을 것입니다. '피의 화요일'은 오늘도 우리 삶 속에서 영원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립 4.19 민주묘역 사이버 분향소

http://419.mpva.go.kr/

1) 20세기 후반 전 세계적으로 일기 시작한 이른바 ‘스튜던트 파워(student power)’는 학생들에 의해 주도되는 사회개혁 운동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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