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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시냇물은 저 혼자서 흐르지 않는다. 앞에서 당겨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협업의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졸졸 흐르는 시냇물'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높이차이(경사)와 중력이 함께 작용해야 하지만, 물 분자끼리 잡아당기는 힘도 무시할 수 없다. 요 몇 일 나는 끌어당기는 물이 되어 보았다. 여전히 나에게도 버거운 나라이지만, 그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익숙한 곳이기에 나라도 뭔가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난 곧 떠날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뭔가를 기대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단지 떠나기 전에 '선배'로서가 아닌, 단지 앞서 걸어갔던 사람으로서 응당 해야 할 뭔가(?)를 해줬던 것 같다. 갈 때가 되니 은근 바쁘다 결자해지 실은 너무나도 바쁜 요즘이다. '2년 ..
한 치의 계산속이나 탐욕도 없이 이성을 그저 온 가슴으로 사랑한다. 하나로도 멀쩡하게 살 수 있는데 두 개나 되는 신장. 빼낸만큼 다시 만들어지는 골수. 신이 사람에게 여분을 준 것은 서로 나누라는 뜻이다.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라 집안 가구의 배치만 달리 하는 것만으로도 두뇌운동을 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매일매일 고정된 일상을 살다 보면 어느덧 인생은 나락처럼 바닥으로 떨어진다. 병아리가 부화하지 못하면 죽고 말듯 인생도 알을 깨지 못하면 빛도 보지 못한 채 사그라들고 만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감투들 구지 틀에 박힌 삶에 연연해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들 무슨 소용인가? 이미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틀에 갖혀 산다. 아들, 형, 친구, 청소년, 고3 등 써야할 감투도 많고, 회피하고픈 이름도 많다. 나는 누구인가? 셀 수 없이 많은 틀 안에서 살다보면 문득 자기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도 모르게 될 때가 있다. 어디서 와서 또 어디로 가는지? 삶의 근원조차 모른 채 그저 그런 군상마냥 도시 속을..
어느 순간부터 거지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곧잘 동전 한 닢씩 꺼내주곤 했는데,(동전 하나면 저들의 한 끼 식사 정도는 해결된다) 남에게 베풀며 살고 싶었는데,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진정으로 도움이 절박한 사람보다는 내가 돕고 싶은 사람들만 챙겼다. 어쩌면 그것은 진정한 도움이라기보다는 내 사심이었을 거다. 떼거지, 떼거리 거지가 흔한 것도 문제다. 한 블럭에 꼭 한 명씩은 있어 이제 그들의 생김새와 특징을 외우울 정도다. 한 아저씨는 거지라기보단 노숙자에 가깝다. 점심 때 종종 길가 레스토랑에서 보곤하는데, 늘 뭔가를 구입해서 드신다. 평상시에도 절대 구걸하는 법이 없으시다. 그러나 행색은 영락없이 거지다. 요즘은 거지들의 수난시대다. 도로를 넓힌다고 보도블록을 대대적으로 공사하는 바람에 거지..
작지만 큰 힘이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해피빈 기부다. 가정법 기부천사 늘 가정법 속에서만 기부천사였던 나에게 작은 버팀목처럼 찾아온 녀석, 여력만 되도 남을 돕겠다던 그 시절의 푸른 다짐을 부끄럽지 않게끔 만들어줬던 녀석, 잊을 만하면 툭 튀어나와(팝업창) 소외된 이웃을 떠올리게 만들었던 녀석. 그 녀석을 말한다. 잿빛마음 IMF와 미국발 서브모기지 부실사태는 나와 내 이웃의 희망을 잿빛으로 물드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강한 생명력을 담보로 여느 때처럼 이어졌다. 학교에 가고, 공부를 하고, 친구를 만나는 일상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 한 가지 달라진 건 마음이 잿빛으로 변했다는 거다. 뭐를 하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갑작스레 염세주의자가 된 느낌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