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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랭 그녀는 예술가인가 연예인인가?

수다공작소 2010. 4. 5. 19:07

 

블루오션 전략을 통해 화려하게 등장한 낸시 랭. 왜 토종 한국인인 그녀는 본명이 아닌 낸시 랭으로 활동하고 있을까?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핫이슈로 떠오른 그녀. 새하얗게 분장한 얼굴에 거의 전라에 가까운 속옷차림으로 거리행진에 나선 후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던 그녀에게 세간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그 후 쌈지의 아트디렉터로 영입되면서 우리는 심심찮게 그녀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속옷 수집광이도 한 그녀의 직업은 예술가, 즉 퍼포먼스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드러내는 행위예술가다. 그녀가 즐겨다루는 예술의 주제는 성sex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보여주는 대중과의 소통방식이 저속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작품을 폄하하려고 들지만, 상당한 내공이 쌓인 예술세계임을 많은 분들이 인정하고 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초기 예술작품이 그랬듯 낸시 랭 역시 파격과 함께 '이게 뭐야?'라는 신선한 화두를 던졌다. 나이 어린 예쁘장한 아가씨가 예술을 한답시고, 옷을 훌러덩 벗어버리니 당연히 대중으로서는 그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제 2의 낸시 랭들이 등장하면서 성은 더 이상 감추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표출해야 할 지극히 당연한 우리 자신이 되었다.

 

 

최근 광운대 테드모임에서 헤나 윤이란 예술가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 또한 예술을 통해 세상을 다시 한 번 비꼬는 작업을 당연함에 찬물을 끼얹는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어떻게 보면 제 2의 낸시 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작품 성향이 비슷해 보였다. 상업화된 여성의 몸의 전형을 보여줌으로써, 더욱이 그 패러다임 속에서 상품화된 부부들을 특단의 조치로 과대포장함으로써 그간의 관행과 시선에 일침을 놓는 그녀들의 독특한 작업들은 이 시대의 의미있는 몸짓이 아닌까 싶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더이상 주객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헤나 윤의 작품 중 하나는 관객을 무대로 올리고 주인공을 관객석으로 끌어내리는 작업을 했다. 어찌 면 지극히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발상이다. 주객으로써의 나뉜 상태가 아니라 교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존재로써, 인터렉티브한 변형된 모더니즘의 전형을 표출하고자 했던 것이다.

 

현대는 퓨전과 이종잡종, 다양성의 인정으로 그 틀을 잡아가고 있다. 최근 출시된 아이포드 역시 카테고리 킬러로써 전작의 아이폰의 영역마저 침범하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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