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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보는 장사지만, 막상 해보니 뿌듯하다.

수다공작소 2009. 10. 16. 05:14

떠나기 위해 비웠고, 비우기 위해 팔았다.

 

 

남은 세제까지 봉달이에 담아 팔아치운 나였지만, 실제로는 속빈강정처럼 실속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물건 파는데 이골이 난 사람이다"라고 여겼지만, 실상 성공적인(?) 판매의 핵심은 "손해보는 장사"에 있었다. 어차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이니 애시당초 이문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없어도 될 물건들에 휩싸여 정작 필요한 물건들을 보지 못할까 두려웠다.

 

카메라도 가고, 노트북도 가고

 

정말 팔고 싶지 않았던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어찌 속일 수 있으랴! '잃어버렸다고', '고장났다'고 애기하자 몇 십 번 되새겼는데, 실상 그런 말은 단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원래는 팔고 가도 되겠다 싶었지만, 카메라 없이 여행하는 게 어디 말이 될 법한 일인가? 그래서 별의별수를 다 써보려고 리허설을 했지만, 돌아오는 20일에 모든 것을 넘겨주기로 했다. 어찌나 아이마냥 좋아하시던지, 감히 그 순수한 얼굴에 어찌 침을 뺕을 수 있으랴.

 

친절한 아나스

 

막상 모든 짐을 정리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하얀거짓말조차 허용치 않았던 내 행동이 오히려 날 뿌듯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난 그들에게 있어 "친절한 아나스"로 영영 기억될 것이다.(물론 보는 이에 따라 춤추는 아나스, 시누아 아나스, 라벨비 아나스로 기억되겠지만)

 

선물을 줬더니 얼마냐고 묻더라.

 

지난 겨울 부모님의 선물을 손수 챙겨줬던 마스타. 군대시절 '맛스타'를 연상케하는 이름 때문에 단번에 외울 수 있었던 이름인데, 여하튼 그녀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그런데 선물을 받은 그녀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됐다.

 

"꽁비엥(이거 얼마니)?"

"왈루(공짜, nothing)"

 

불어로 묻고 아랍어로 답하는 나의 구린 언어 생활이 완전 도정되는 순간이었지만, '왈루'에 급방긋하시는 마스타 때문에 행여나 별 볼 일 없는 선물 때문에 아니 준만 못할까봐 걱정했던 마음이 쏙 들어갔다.

 

예나 지금이나 음식해주는 게 가장 좋다.

 

직접 담근 고추장을 줄려고 딱 한 병 남겨뒀는데, 냉장고가 없어서 큰 일이다. 행여나 곰팡이가 슬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쌈장은 정말 끝장이라 남주기도 아까웠는데, 이미 임자를 정해뒀다. 냄비는 선생님댁 드릴 거고, 내 쇼파는 인근 단원(라바트)에게 챙겨줄 생각이다. 씨디알리까지 챙겨주면 정말 풀옵션일텐데, 그렇지 못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맛은 둘째 치더라도 남을 위해서 음식을 만드는 걸 참 좋아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음식하는 행위 자체보다 적은 비용으로 음식을 많이 해서 원래의 가치보다 더 풍성히 나눌 수 있다는 경제논리를 즐기는 것 같다. 5,000원이면 식당밥 한끼로 끝나겠지만, 그 돈으로 식재료를 사 요리를 하게 되면, 네다섯 사람은 응당 배부르게 되기 때문이다.

 

남들은 이런 나를 쫌생이라 여기겠지만, 절약하는 게 워낙 몸에 배어 있어 지출결정이 그리 쉽지 않다. 특히 꽃을 선물하는 일은 죽기 만큼 싫다. 나름 꽃꽂이 경력 2년인 나로서 꽃다발의 원가가 쉽사리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천 원짜리를 어찌 일만 원에 살 수 있단 말인가?)

 

이제 끝이다.

 

 

영화가 끝나고 암전이 드리우고, 끝이라는 단어가 올라갈 때, 그 동안의 기나긴 삶이 한순간이 되어 삽시간에 훑어질 때. 끝, 그 언저리에 서서 나도 모르는 슬픔과 교차하고,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의 벅찬 가슴으로 추억들을 고이 접어내릴 때. 이제 끝인가 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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