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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들의 수난시대

수다공작소 2009. 9. 28. 22:30

어느 순간부터 거지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곧잘 동전 한 닢씩 꺼내주곤 했는데,(동전 하나면 저들의 한 끼 식사 정도는 해결된다) 남에게 베풀며 살고 싶었는데,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진정으로 도움이 절박한 사람보다는 내가 돕고 싶은 사람들만 챙겼다. 어쩌면 그것은 진정한 도움이라기보다는 내 사심이었을 거다.

 

떼거지, 떼거리

 

 

거지가 흔한 것도 문제다. 한 블럭에 꼭 한 명씩은 있어 이제 그들의 생김새와 특징을 외우울 정도다. 한 아저씨는 거지라기보단 노숙자에 가깝다. 점심 때 종종 길가 레스토랑에서 보곤하는데, 늘 뭔가를 구입해서 드신다. 평상시에도 절대 구걸하는 법이 없으시다. 그러나 행색은 영락없이 거지다.

 

요즘은 거지들의 수난시대다. 도로를 넓힌다고 보도블록을 대대적으로 공사하는 바람에 거지들이 딱히 설만한 곳이 없다. 이건 노점상주도 마찬가지다.

 

일단 마주치면 손부터 벌리는 그들이라 거지는 종종 외면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계산적으로 그들을 외면한다. 이미 익숙한 그들인지라 전방 10미터 정도만 있어도 그들이 감지 된다. 바로 이때부터 내 머리가 요란하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길은 저기서 건너면 좋겠는 걸',

'가급적이면 먹을 게 든 봉투는 보여서는 안 돼',

'이왕이면 갓길로 걸어 그들을 피하는거야'.

 

이런 곱상치 못한 나의 생각이 요즘 나를 대변한다. 어떤 거지는 이런 내 마음을 간파한 건지 100미터는 족히 쫓아온다. 웬만해선 그들의 활동범위를 넘는 법이 없는데, 요즘 도로공사가 그들에겐 정말 곤욕인가보다. 아무튼 그런 거지라면 난 그 수고를 높이 취한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저리도 열심히 노력하는데 얼마다 대견한가? 난 내게 없는 그들의 끈질김이 부럽다.

 

하지만 거지는 거지일뿐이다. 나 그들보다 길거리 행상인을 더 존경한다. 거지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그들의 삶의 전선을 난 늘 경외하듯 바라본다. 한 팔 가득 중국산 시계를 안고 다니는 젊은이서부터  남성용 속옷을 가방에 담아 파는 아이까지... 난 너무 모질게도 한 번도 그들의 물건을 사준 적이 없다. 물론 내게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 어쩔 수는 없었지만 늘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과일 정도는 리어카에서 구입하곤 한다. 근데 내가 외국인이란 이유만으로 값을 더 쳐 받는 사람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물론 백이면 백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쉽게 그 앞을 지나치곤 한다.

 

절대적 가난에 쳐해본 적은 없지만 가난이 무엇인지 안다. 난 하루라도 샤워를 하지 못하면 몸이 미칠 듯 간지러운데, 난 저녁만 되면 식욕이 풍선껌마냥 부풀어오르는데, 난 마음에 드는 수첩만 보면 사고 싶어지는데, 이 모든 것들을 할 수 없는 절대적 빈곤의 상태.

 

있는 자의 것을 조금 훔치는 행위는 쉬이 묵인된다.

 

왜 거리의 아이들이 나의 시계를 취하기 위해 그리도 무모한 일을 저질렀는지, 어떤 이에 의해 내 디지털카메라가 버젓이 훔쳐지고 있음에도 왜 사람들이 그 모든 광경을 그대로 묵인해줄 수 있었는지, 가난은 도덕성마저도 검게 물들여버린다. 그들은 더럽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 마음까지 더럽다곤 하지 못하겠다. 생계를 위해 적당한 수단을 낼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마저도 할 수 없는 영혼도 있는 법이니까.

 

멀리 타국땅에 와서 봉사라는 빛 좋은 허울을 껴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실제 난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더 "뭐다" 라고 주장할수록 난 더 아무것도 아닌 수렁에 빠져버린다. 난 어쩌면 이 글을 쓰고 난 뒤에도 거지를 외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장님 남편을 옆에 끼고, 코흘리개 아이를 업고 있는 한 아주머니까 또 휴지꽉을 들리밀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전체 부의 50%가 단지 1%의 사람들에게 속해 있다는 것.

 

 

내가 이 나라에 와서 가져가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그들의 초점 없는 눈빛이다. 누가 세상을 이리도 초점 없게 만들어버린 걸까? 있는 자들의 허래 허식을 위해서 없는 자들의 고통쯤은 당연시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 사회! 나도 그런 생각에 일조하는 건 아닌지 의심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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