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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삼각지에서 벗어나고 싶다. 본문
제 콩글리쉬 표현 엣지있지 않나요?
[옳은표현] This tie matches with your shirt. 이 넥타이는 당신의 셔츠와 어울린다.
[콩글리쉬] This tie will get married with your shirt. 이 넥타이는 당신의 셔츠와 결혼할 것이다.
나의 뇌는 구조적으로 언어와 친하지 않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내짝은 늘 받아쓰기에서 100점을 맞았지만, 난 50점이라도 맞는 날이면 그날은 오백 원 짜리 동전을 주운 것마냥 기뻤다.
서른이 코앞인 지금, 아직도 언어구사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받아쓰기 50점의 여파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언어는 난제 중의 난제다. 특히 영어구사능력은 부끄럽기가 한없을 정도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영어를 접했으니 인생절반은 영어와 함께 살았다고 볼 수 있는데, 어쩜 영어 한 마디 내뱉는 게 그리도 힘든 걸까?
원서도 곧잘 읽고 나름 어휘도 많이 알고 있어 까막눈은 아니었지만, 내 귀에 영어는 꼬부랑 글씨 그 자체였다. 요즘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영어권 뉴스를 듣지만, 단어만 들리지, 바로 바로 해석되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왜 단어는 들리는데 내용은 기억되지 않는 걸까?
난 생긴 거와 다르게 집중력이 매우 약하다.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는 전혀 신경 쓸 수 없기 때문에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싶게 범한다. 어떻게 보면 집중력이 너무(?) 좋은 것일 지도 모르지만, 편협한 시야와 비연속적인 사고과정 때문에 전체를 호도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러니 영어 한 문장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반복학습이 절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또 그런 거는 못하겠다고 깡다구를 쓴다.
학습능력은 좋은데 왜 유독 언어에만 젬병!
이유는 바로 게으름 때문이었다. 언어는 본래 쓰고, 듣고, 읽고, 말하면서 배우는 건데, 나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흉내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배움을 사랑한다. 내가 아는 배경지식에 새로운 지식들을 접붙이는 과정만큼 날 설레게 만드는 일도 없다. 그런데 난데없이 내 안의 나무늘보가 튀어나와 게으름을 위한 변명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죽일 놈의 게으름이란!
나의 버뮤다삼각지는 게으름삼각지
일단 뭔가에 호기심을 느끼면 무진장 파고드는 인간형인데, 그래서 게으름과는 영영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긋는 아이라 생각했는데, 약간 핀트가 엇나갔다고 이렇게 게으름 삼각지에서 허우적댈 줄 결코 몰랐다.
가장 행복했던 고등학교 1학년 때로 돌아가고 싶다. 부족했기에 채울 수 있었고, 채울 수 있었기에 행복했고, 행복했기에 공부가 즐거웠던 바로 그 시절. 그 시절의 기쁨이야 말로 나를 이 게으름 삼각지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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