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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하루

추억의 일기장 속으로

수다공작소 2009. 12. 3. 01:17

1996년 1월 12일 금요일 할머니를 위해서 더 추워져라.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할머니 한 분이 고구마를 굽고 계셨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호주머니 사정이 변변치 않았다. 그래서 그 자리를 그냥 지나쳐버렸다.

 

날씨가 추워져야 할텐데, 그래야 할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 질테니

 

1월 13일 토요일 약속은 애초부터 없었어

 

약속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하품이 나왔다. 게다가 누님이 친구를 데리고 왔다. 시간에 좇기다 겨우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누구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깜깜 무식인 나는 희철이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여보세요' 하는 순간 저쪽에서 정민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정민이는 듣기 싫은 말을 잔득 풀어놓고 가버렸다. 집에 와보니 애시당초 그런 약속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슬퍼졌다. 방학은 따분하고 심심한데... 준비한 시도 있었는데

 

노천명의 '사슴'을 바탕으로

 

변함없이 아름다운 여인이여

언제나 고운 미소를 짓구나

감히 손 댈 수 없는 너를

나는 무척 사랑했나 보다

 

여인의 가슴에

내마음 비추어보지만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슬픈 미소 지으며

강 건너 여인을 바라본다

 

1월 14일 일요일 이 비가 눈이 되었으면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구름 때문인지 아침 7시인데 한방중 같았다. 옷은 비에 젖고, 비는 그질줄 모르고 내렸다.

 

비는 거리 곳곳을 시내로 만들고 있었다. 앞만 보고 가는 중 작은 웅덩이에 발이 빠져 신발이 물에 축축해졌다. 이 비가 눈이 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허탈해졌다. 언제쯤 소복히 쌓인 눈을 볼 수 있을까?

 

세월이 가면 - 박인환

 

개울에 띄운 배는 저만치 가버렸지만

그 설레임은

내 가슴에 있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나는

그늘에 가려진 배를 잊지 못하네.

 

인생은 가고 추억은 남는 것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듯

 

나뭇잎은 덜어지고

마멸되어

흙이 되고 사라진다.

 

배는 저만치 가버렸지만

그 설레임은

내 가슴에 있네.

 

1월 15일 중학교를 나오지 않은 정완이형

 

 

어제부터 비가 오더니 종일 비가 내렸다. 정완이형을 보았다. 광장반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앞으로 자주 볼 것 같다. 그런데 왜 중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을까?

 

빗물이 옷에 흠뻑 젖어 있었다. 수건이라도 있으면 좋았을텐데, 다리가 아픈 일을 했었다. 걷기도 힘들 정도였다.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1월 16일 화요일 술주정하는 아랫집 아저씨

 

수학선생님꼐서 200원 하는 얼음과자를 사주셨다. 입이 시렸다.

 

밤 10시 30분이었다. 아래층에서 문을 발로 차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나가본다기에 말렸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나 순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해졌다.

 

어머니는 인터폰으로 경비아저씨게 알렸다. 바닥이 심하게 흔들리는 진동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씨그러워졌다. 이 아저씨가 아직 술에서 깨어나지 못하셨나 보다. 적당히 마실 것이지.

 

1월 17일 수요일 인사하기는 어려워

 

시장(marcat)을 지나는데 원의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그냥 아줌마인줄 알았는데 원의이 어머니셨다. 인사를 할까 망설여졌다. 얼떨결에 고개를 숙였지만 어색했다. 왜냐하면 이런 곳에서 어머님을 볼 줄 몰랐기 대문이다.

 

Sofa에서 밀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것이 사건의 계기가 되었다. 한껏 욕설을 퍼붓고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둘러쓰고 잠을 잤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1월 18일 목요일 나쁜 녀석들

 

의향이라는 누나의 친구가 와서 '나쁜 녀석들'을 보게 되었다. 제목만 나쁜 녀석들이지 영화에 나오는 두 명의 경찰은 나쁜 녀석들이기 보다는 착한 녀석들이라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를 주었다. 내용 중 한 여인이 죽는데 강한 인상을 주었다.

 

1월 19일 금요일 세대차이

 

목욕탕에서 아버지가 때를 밀어달라 했다. 20분에 만 원이라는데 몸이 말이 아니어서 해주지 못했다. 목욕을 마치고 집에 오는데 라디오에서 박진영의 엘리베이터가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이것도 노래냐며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잘만 따라했다. 이런 게 세대차인가보다.

 

1월 20일 토요일 오늘은 일요일

 

금요일일까? 숙제를 하려고 머리를 쓰는데 풀리지 않는 문제가 거의 다였다. 그러나 숙제를 못하면 벌을 받을 것 같아 억지로 풀어나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시간을 보려고 거실로 나갔는데 신문이 눈에 띠었다. 재미있는 기사를 읽다가 날짜를 보게 되었는데 20일 토요일인 것을 보고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어쩌면 곰 같은 성격이 여기서 들어날까? 부지런 하지 못한 탓이다. 그 때문에 숙제를 빨리해서 편하긴 했지만 어쨌든 다음부터 날짜를 알고 살아야겠다.

 

1월 21일 일요일 시계가 필요해

 

교회를 가지 못했다. 몇 일 전부터 시계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일이 생겨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그냥 11시까지 잠을 청할 뿐이었다.

 

왜 스스로 일어나지 못할까? 왜 다 큰 것이 오줌을 쌀까? 누가 이 일기라도 읽는 날에는 어떻게 될까? 미래에 가지는 희망이 안개 속으로 희미하게만 보인다. 낭만을 동경하고 행복을 사랑하는 나이지만 이런 구차한 일들로 구속 받는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싫어진다. 방학인데도 할 일 없이 시간이나 떼우고, 이룰 수 없는 상상에만 잠기어...

 

그래서 그림을 그렸다. 다른 때보다 쉽게 그렸다. 왜 그렸는지는 모른다. 좋은 붓이 생겨서일까? 마음이 편해서일까?

 

p.s 지금 읽는 주홍글씨를 빨리 읽었으면 좋겠다. 명원이에게도 편지를 보내고

 

1월 22일 월요일 더이상 어린애 취급하시마

 

학원을 가려고 이빨을 닦는데 치약과 샴푸가 다 떨어져있었다. 그래서 어머니께 달려가 이렇게 말했다.

 

"치약이랑 샴푸랑 떨어졌는데 내가 학원 갔다오면서 사올께."

 

그런데 누나가 내가 사온 샴푸는 쓰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 집에 있는 걸로 사오면 된다고 그래도  안 된다는 것이였다. 악마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화가 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16세에 어린이 취급을 해서이다.

 

항상 그것이 못마땅했다. 평소에는 잘도 부려먹으면서 말이다. 사건의 발생은 이러하다. 어머니에게 모자 사주라고 준 돈 10,000원으로 샴푸와 치약을 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도 지나간 일인데 무슨 돈이냐고 하셨다. 이렇게 10분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나는 학원에 안 가겠다면 방문을 잠고 자려했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아 방학숙제를 했다.

 

저녁 7시쯤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10,000원과 1,000원을 주시며 '이건 네 돈이고 이것은 내가 주는 것이니 받아두어라'

 

순간 우울해졌다. 돈을 받으려고 한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p.s 어머니는 아버지 옷을 사려고 돈을 주시지 않은 것임. 평소 돈문제로 다투시는 부모님이 싫어서인지 돈 쓰기를 싫어했는데 정말 창피해 죽겠다.

 

1월 23일 화요일 집에 도둑이 드는 것보다 학원 가는 게 더 중요해

 

1시 25분이 지났다. 아무리 찾아본들 열쇠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학원을 가지 않기로 했다. 그후 30분이 지나 2시가 되었다. 창밖을 보며 한숨을 쉬다 누나방에 들어왔다. 그런데 뜨개질할 게 눈에 띠였다. 그 후 30분 동안 뜨개질을 하면서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도둑은 무슨 도둑이냐 하면서 마음을 바꾸었다. 문을 열어놓고 학원을 향했다. 비록 영어시간은 땡땡이쳤지만 수학시간 듣고 왔다.

 

a day만 빠졌는데도 어색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욕심을 부려야겠다.

 

p.s 장호일이 박소현에게 결혼하라고 하는데....

맨발의 아베베(에티오피아) 팬티 바람에 싸구려신으로 마라톤에서 1위를 했다. 옷이 메이커면 뭐하냐? 백화점 아닌 골라 상가!

 

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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