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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이외수의 생존법

수다공작소 2009. 10. 12. 14:32

'대중에서 벗어나기' 놀이 

 

 

'대중적이다'라는 말. 왠지 시시해보여서 싫다. 개나 고동도 주워들어 아는 이야기라면 구지 그 이야기를 탐닉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여기 이외수라는 사람은 늘 '대중에서 벗어나기 놀이'를 즐긴다. 이왕 가는 길이라면 갑남을녀의 길보다는 '이외수식' 길을 선택하는 게 그에게는 좀 더 안전빵으로 보인다.

 

나는 대중으로서 그를 만났다. 처음에는 그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단지 이외수라는 사람이 세간의 관심을 받았더라 정도로만 알고 넘어갔다. 그런데 오늘 그를 다시 만났다. 우리는 흔히 이런 상황을  '재조명한다'라고 표현한다. 대중적이라서 외면했던 그였는데, 다시금 대중이 되어 반겼더니 고집스레 한 길만 갔다면 못 봤을 그런 재미난 게 그에게서 보였다.

 

누가 봐도 그닥 매력적일 게 없는 그의 외모. 한 겨울 칼바람에  흠씬 두들겨맞은 듯 이래저래 고무적일 게 없는 수염이 어설프게나마 그와 대중을 연결시킨다.

 

'하악하악' 무슨 소릴까? '의성어나 의태어 중 하나일거다'란 생각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책 겉표지 한 가운데 우두커니 머문 용두어미는 어쩐다. 마치 독자의 심미안이라도 읽어내려 한 듯 보면 볼수록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페이지page를 넘겼다.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글은 없고 여백의 美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펄프를 이리 낭비해도 되나? 괜히 환경론자가 되어본다.  

 

어렵지도 쉽지도 않아

 

 

책은 의외성을 지니고 있었다. 글쟁이가 글을 적게 실은 것도 못마땅했지만, 삽화마저 삼시새끼 김치마냥 질릴만큼 등장해 이거 책이 화를 돋군다 싶었는데 찬찬히 뜯어보고 읽어보고 말아보고 돌려보고 놔둬보고 했더니 그것만큼 제대로된 구성이 없다 싶었다. 책은 심오할 듯 하지만 가볍고, 가벼운 듯 무거웠다. 이는 복잡할 듯  말 듯한 책의 역설적 줄타기를 몸소 실천해 보여주겠다는 의지 같았다. 그래서 나는 책의 구성도 삽화도 내용도 혹 그 안에 끼어 있을 마케팅적 속임수도 장님 코끼리만지 듯 눈감게 됐다.

 

p15 "세상을 살다 보면 이따금 견해와 주장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고 '틀린 사람'으로 단정해 버리는 정신적 미숙아들이 있다. 그들은 대개 자신이 '틀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자기는 언제나 '옳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한다. 성공할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한 사람이다."  

 

p43 "그대 신분이 낮음을 한탄치 말라. 이 세상 모든 실개천들이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흐르지 않았다면 어찌 저토록 넓고 깊은 바다가 되어 만 생명을 품안에 거둘 수가 있으랴."

p46 "사람은 손이 두 개다. 오드리 햅번의 말처럼 한 손으로는 자신을 보살피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남을 보살피라는 뜻이다. 그럼 다리가 두 개인 이유는 무엇일까. 한 다리로는 자신을 지탱하고 다른 한 다리로는 나쁜 놈들을 조낸 걷어차주라는 뜻이다. 아놔, 자비심. 나쁜 놈들에게는 때로 발길질도 자비요 축복이다."

 

근데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그것은 '똥'을 만났을 경우이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을 명심하라.

 

p70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더 나쁜 놈일까요, 늑대의 탈을 쓴 양이 더 나쁜 놈일까요."

 

늑대아이를 아는가? 비록 몸은 사람이지만 정신세계는 늑대스런 아이 말이다. 양도 늑대굴에서 살면 늑대인 거고, 늑대도 양떼로 살면 양되는 건 시간문제다. 적어도 양의 탈은 쓴 늑대라면 대놓고 살육을 안 할테니 어느 정도 본성을 제어하는 능력을 가졌다 볼 수 있고, 늑대의 탈을 쓴 양이라면 초식동물이란 숙명을 극복하고 육식동물된 것이니 이는 과히 세계적 이슈라 할만하다. 

 

가난한 부모를 탓하는 생각없는 자식들에게

 

 

 p93 "병아리들이 "엄마 우리는 왜 하늘을 못 날아" 하고 물어볼 때 어미닭은 제일 복장이 터진다. 그대가 만약 자녀로부터 열등한 부분을 지적당한 어미닭이라 하더라도 "한 번만 더 그 따위 소리를 지껄이면 주둥이를 확 뭉개버릴 거야"라고 윽박질러서는 안 된다. 적어도 부모라면 "우리의 먹이는 땅에 있기 때문에 하늘을 날 필요가 없단다"라고 의연하게 대답해 주는 성품이 필요하다."

 

솔직히 부모님을 훈계하는 자식으로 치자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나이기에 이 이야기가 참 마음에 속 든다. 근데 조금 있다가 나의 안일한 생각이 차차 무너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p94 "수천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쉬파, 빈곤으로 허덕이는 이웃을 땡전 한푼 도와줄 수 없다면, 그넘이 가난뱅이와 무엇이 다르겠느냐."

 

마음씨 고약한 부자에게 된통 마음을 데인 뒤에 내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눈 먼 남편을 끌고 땟국물로 얼룩진 아이를 업은 채 정차 중인 차들 사이를 지나가는 아낙네의 티슈꽉을 사주는 일이었다. 10디람 어치를 선뜻 내주지 못할 만큼 그 동안 나는 가난뱅이이어나보다.

 

p126 "그대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없고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없는 처지라면, 그대의 인생길은 당연히 비포장도로처럼 울퉁불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많은 장애물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의 장애물은 하나의 경험이며 하나의 경험은 하나의 지혜다. 명심하라. 모든 성공은 언제나 장애물 뒤에서 그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p135 "그래, 다양성은 인정하자. 바다에는 정어리만 사는 것도 아니요, 육지에는 소나무만 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버려진 페트병도 정어리나 소나무와 똑같은 생명체로 취급해야 한다는 억지 따위는 부리지 말자."

 

네팔의 과부는 '악마'이다!?

 

어제 주말시사프로 W에 네팔의 과부가 나왔다. 그들은 오랜 힌두교의 악습에 따라 사회적으로 악마로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언제나 외출시에는 얼굴을 가려야 했고, 그들의 분신(주홍글씨)처럼 흰 옷을 입고 다녀야 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남편을 잡아먹은 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네들의 시부모에게서조차 외면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더욱이 법적인 금지에도 불구하고 조혼풍습이 여전히 지켜지고 있어서 청산과부들이 속출하는 판이다. 이들을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이래도 다양성을 인정하고자 모든 절대적 가치들을 거부하려 들려고 암전구투하려 하는가?

 

p145 "하나님, 인생말년에 어쩌다 축복 한번 다운 받아보고 싶은데 버퍼링이 너무 깁니다. 파일의 용량이 너무 많아서인가요."

기분이 좋아진다.

 

p239 "하필이면 비 오는 날 태어난 하루살이에게, 굳이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려는 넘들이 있다. 이럴 때는 자식이 곧 죄악이 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부모님께 내가 아는 지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도 이 지식들을 알게 되면 뭔가 달라질 거라는 일말의 희망 따위를 가슴에 품고 말이다. 하지만 흐르는 강을 잡으려고 손사래를 치는 것만큼 이 일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면 그들은 어쩌면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이지 책 읽는 일에는 젬병인 사람이다. 봐라! 나는 책을 '읽는 일'이라고 표현할 만큼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런 내가 책을 읽고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는 이유는 내가 너무도 부족한 인간임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인생은 정말 짧다. 그만큼 살아가면서 겪을 일들도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책은 그런 한계점을 뛰어넘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이다. 어제는 아프리카 북단에 머물렀고 오늘은 이외수라는 한 인간 안에 머물러봤다. 앞으로 나는 또 어딘가에 머물 예정이다. 적어도 지금 나는 내게 그 시간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책 읽는 시간을...

 

하악하악: 이외수의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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